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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로 유명한 영월을 즐기자

by 저스트원스텝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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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깃들어 있는 영월의 주요 관광 명소를 알아보자

 

1. 청령포

청령포는 삼면이 동강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반도입니다. 조선왕조 6대 임금 단종이 유배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선 시대의 역사적 혼란을 엿볼 수 있는 고요하고 그림 같은 장소입니다. 방문객들은 청령포 누각에서 강과 주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 곳은 당시의 정치적 분쟁과 어린 왕의 비극적인 운명을 가슴 아프게 상기시켜 줍니다.

지금도 청룡포로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2. 장릉 왕릉

장릉은 단종 임금의 능입니다. 폐위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결국 암살당하고 영월에 능이 조성되었습니다. 장릉은 그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장릉의 고즈넉한 주변 환경은 단종의 몰락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엄숙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3. 별마로 전망대

봉래산 정상에 자리한 별마로 천문대는 별과 천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별마로 천문대는 은하수를 뜻하는 우리말에서 따온 이름으로 천문학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천문대입니다. 대형 망원경과 다양한 천체 관측 장비를 갖추고 있어 밤하늘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천문대는 천문학과 우주 과학에 관한 프로그램과 전시회를 제공하는 교육 센터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4. 동강 래프팅보다 짜릿한 리버버깅

리버버깅은 래프팅 같은 급류 타기 레포츠의 일종이다. 두 레포츠는 급류를 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래프팅은 여럿이 함께하고 리버버깅은 혼자 탄다는 차이점이 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고안된 리버버깅은 리버버그(River Bug, 이하 버그)라고 부르는 1인용 고무보트를 타고 급류를 즐긴다. 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래프팅이나 카약, 카누와 달리 노 대신 손과 발을 이용해 이동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IAGc5qX9g 

5. 고씨동굴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인 고수동굴은 아름다운 지형과 고고학적 중요성으로 유명합니다.  근처에 살던 고씨 일가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곳에 피신했던 일화에서 이름을 다 왔다고 한다. 동굴 발굴을 통해 고대 인류가 거주했던 유물이 발견되어 한반도의 선사시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동굴의 역사적, 지질학적 특징 덕분에 역사 애호가와 자연 애호가 모두에게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a3444f94-3c9f-4b97-8ea3-1aeff940dd39&big_category=A01&mid_category=A0101&big_area=33 

 

6. 환선굴

환선굴은 영월과 가까운 단양 지역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암 동굴 중 하나입니다. 동굴에는 종유석, 석순, 지하수 등이 인상적인 동굴입니다. 역사적으로 환선굴과 같은 동굴은 피난처와 은신처로 사용되었습니다. 동굴의 광범위한 터널과 방들은 방문객들에게 매혹적인 지하 모험을 선사합니다.

 

환선굴이라는 이름은 동굴 안에 어느 스님이 수행을 하다가 나오지 않아서,  스님이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생각해서 환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스님이 쓰던 걸로 추정되는 집터와 아궁이, 절구 등이 남아있어 스님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도 있습니다기사 관련해서 동굴 밖에 아름다운 선녀가 목욕을 하고  동굴로 사라졌다고 해서 환선이라는 표지판도 존재합니다. 기사 

 

 

영월에 얽혀 있는 단종

조선 왕조의 6대 임금인 단종 임금은 한국 역사 기록에 잘 기록되어 있는 가슴 아픈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1. 어린 시절과 왕위에 오르다

  • 출생과 배경: 단종은 1441년 8월 9일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이홍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 문종은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 중 한 명인 세종대왕의 장남이었어요.
  • 즉위: 단종은 1452년 아버지 문종의 죽음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어린 나이로 인해 삼촌들과 고위 궁중 관리들의 영향과 지도를 많이 받았어요.

2. 통치와 정치적 투쟁

  • 섭정: 어린 나이로 인해 처음에는 삼촌인 수양대군(훗날 세조)과 다른 실력 있는 대신들이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이 섭정 기간은 정치적 불안정과 권력 다툼으로 점철된 시기였습니다.
  • 왕위 찬탈: 1453년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알려진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로부터 권력을 탈취했습니다. 그는 어린 왕이 효과적으로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양은 1455년 단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후 세조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3. 유배와 죽음

  • 영월로 유배: 폐위된 후 단종은 처음에는 외딴 사저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러나 세조는 자신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음모를 우려해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를 명령했습니다. 동강으로 둘러싸인 이 외딴 곳은 단종을 고립시키고 어떤 구출 시도도 막기 위해 선택된 곳입니다.
  • 암살: 1457년, '사육신'으로 알려진 단종 복위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더욱 가혹한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쿠데타를 계획한 충신들은 처형되었고 단종은 이후 세조의 명령에 따라 암살당했습니다. 그는 강제로 독약을 마셔야 했고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4. 사후 재활

  • 재활과 명예: 말년에 단종의 업적은 재평가되어 사후에 왕의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숙종 재위 기간인 1698년에는 사후에 '단종'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그의 유해는 영월 장릉에 왕의 예우를 받아 이장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단종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한국 역사에서 깊은 공감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는 재위 기간의 정치적 격동과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지지자들의 충성심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단종 암살은 조선 왕실 내부의 치열한 권력 투쟁의 결과였어요. 조카를 제거하기로 한 세조의 결정은 정치적 필요성과 반란에 대한 두려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은 이 사건에 대한 상세하고 비극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조선 시대 왕실 정치의 잔인한 현실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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